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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에이핑 작성일21-01-11 10:00 조회4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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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연봉조정신청에서 승리한 LG 트윈스 류지현. 프로야구 39년 사에 선수가 이긴 유일무이한 사례로 남아 있다. 스포츠조선DB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LG 트윈스 류지현 감독은 현역 시절 독특한 기록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연봉조정신청에서 프로야구 39년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승리한 선수다.

2002년 시즌을 앞두고 류지현은 전년도 연봉 2억원에서 2000만원 인상을 요구하며 연봉조정 신청을 했다. 소속팀 LG 구단 제시액은 1000만원이 삭감된 1억9000만원. KBO 조정위원회는 유지현의 손을 들어줘 2억2000만원이 확정됐다. 프로야구 출범 20년 만에 첫 선수 승리 사례였다. 이후에도 선수 승리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연봉 고과평가 방식이 정교해지면서 분쟁이 줄었다. 마지막 조정위원회가 열린 건 2011년 롯데 이대호였다. 이듬해인 2012년 LG 이대형의 조정신청이 취소된 이후 2013년부터 조정신청은 자취를 감췄다.

올해는 과연 어떨까. 예년처럼 조용히 넘어갈 것 같지 않다. 코로나19 여파 속 예산을 줄이려는 각 구단들과 선수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복수의 구단에서 연봉조정 신청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연봉조정신청 마감은 오는 11일 오후 6시까지다. 과연 소문대로 실제 조정신청 선수가 나올까. 두가지 측면에서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선, 코로나19 여파로 재정적 타격을 받은 각 구단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연봉 협상 테이블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덜 올려주고, 더 깎으려는 과정에서 마찰이 있다. 창단 첫 우승한 NC 다이노스나 창단 첫 가을야구 진출 팀 KT 위즈 등 괄목할 만한 성적을 올린 팀은 진통이 없을 수 없다.

선수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다. '외부 FA에는 후하고, 기존 선수 연봉에는 박하냐'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올 겨울 FA 시장은 이례적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코로나19 여파로 냉랭할 거란 예상을 깨고, '양의지 효과'를 확인한 구단들이 적극적으로 배팅에 나섰다. 실제 영입하지 않은 구단들도 베팅에 참여했거나, 적어도 고민은 했다.

사실 히어로즈를 제외하고 모기업 의존도가 높은 KBO 구단들의 현실상 기존 선수 연봉과 외부 FA 영입 비용은 별개의 예산이다. 거액의 외부 FA를 잡을 경우 이를 이유로 별도의 추가 예산을 더 지원받는 구조다. FA 영입을 안 했다고 그 돈을 연봉으로 전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장 주머니가 홀쭉해질 기존 선수 입장에서는 이런 구단 사정을 곱게 이해할 리 없다.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며 감정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다.

둘째, 정착된 대리인 제도도 연봉조정 신청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선수가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구단과 껄끄러운 대면 접촉을 해야 했던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리인 역시 구단 눈치를 전혀 안볼 수는 없다. 하지만 선수 본인보다는 훨씬 부담이 덜하다.

선수와 구단은 각각 연봉조정 신청 마감일로부터 5일이 되는 날 오후 6시까지 근거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선수나 구단 중 하나가 자료제출을 하지 않으면 제출한 쪽의 희망 연봉으로 자동 확정된다. 근거 자료도 선수 본인보다 대리인이 훨씬 풍성하고 정교하게 준비할 수 있다. 비교 자료가 많을 뿐 아니라 법률적인 지식에 있어서도 전문가가 많기 때문이다.

합리적 근거에 의해 도출된 희망 연봉일 경우 예년처럼 무작정 구단이 승리하리란 보장은 없다. 류지현 사례 이후 두번째 선수 승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2012년 이후 9년 만에 연봉조정 신청자가 나올까. 결론 확인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전주덕진소방서
산업폐기물 소각장에서 불이나 2억원 가량에 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11일 오전 1시 51분께 전북 전주시 덕진구 팔복동의 산업폐기물 소각장에서 화재가 났다.

이 불로 소각장 1동중 절반이 타고, 제어실과 기계류 등 다수 물품이 소실됐다.

또 이날 오전 9시 50분 현재 소각장에 쌓여있던 산업폐기물 300톤 가운데 200톤이 진화된 상태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소각장 관계자 등을 상대로 정확한 화재원인을 조사중이다.

[김성수 기자(=전주)(starwater2@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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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연봉조정신청에서 승리한 LG 트윈스 류지현. 프로야구 39년 사에 선수가 이긴 유일무이한 사례로 남아 있다. 스포츠조선DB
[스포츠조선 정현석 기자]LG 트윈스 류지현 감독은 현역 시절 독특한 기록 하나를 보유하고 있다. 연봉조정신청에서 프로야구 39년 역사상 유일무이하게 승리한 선수다.

2002년 시즌을 앞두고 류지현은 전년도 연봉 2억원에서 2000만원 인상을 요구하며 연봉조정 신청을 했다. 소속팀 LG 구단 제시액은 1000만원이 삭감된 1억9000만원. KBO 조정위원회는 유지현의 손을 들어줘 2억2000만원이 확정됐다. 프로야구 출범 20년 만에 첫 선수 승리 사례였다. 이후에도 선수 승리 사례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연봉 고과평가 방식이 정교해지면서 분쟁이 줄었다. 마지막 조정위원회가 열린 건 2011년 롯데 이대호였다. 이듬해인 2012년 LG 이대형의 조정신청이 취소된 이후 2013년부터 조정신청은 자취를 감췄다.

올해는 과연 어떨까. 예년처럼 조용히 넘어갈 것 같지 않다. 코로나19 여파 속 예산을 줄이려는 각 구단들과 선수들 사이에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고 있다. "복수의 구단에서 연봉조정 신청자가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연봉조정신청 마감은 오는 11일 오후 6시까지다. 과연 소문대로 실제 조정신청 선수가 나올까. 두가지 측면에서 가능성은 충분하다.

우선, 코로나19 여파로 재정적 타격을 받은 각 구단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연봉 협상 테이블에 한파가 몰아치고 있다. 덜 올려주고, 더 깎으려는 과정에서 마찰이 있다. 창단 첫 우승한 NC 다이노스나 창단 첫 가을야구 진출 팀 KT 위즈 등 괄목할 만한 성적을 올린 팀은 진통이 없을 수 없다.

선수 입장에서는 불만이 있다. '외부 FA에는 후하고, 기존 선수 연봉에는 박하냐'는 볼멘소리가 터져나온다.

올 겨울 FA 시장은 이례적으로 열기가 뜨거웠다. 코로나19 여파로 냉랭할 거란 예상을 깨고, '양의지 효과'를 확인한 구단들이 적극적으로 배팅에 나섰다. 실제 영입하지 않은 구단들도 베팅에 참여했거나, 적어도 고민은 했다.

사실 히어로즈를 제외하고 모기업 의존도가 높은 KBO 구단들의 현실상 기존 선수 연봉과 외부 FA 영입 비용은 별개의 예산이다. 거액의 외부 FA를 잡을 경우 이를 이유로 별도의 추가 예산을 더 지원받는 구조다. FA 영입을 안 했다고 그 돈을 연봉으로 전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당장 주머니가 홀쭉해질 기존 선수 입장에서는 이런 구단 사정을 곱게 이해할 리 없다. 상대적 박탈감이 심화되며 감정 대립으로 치달을 수 있는 상황이다.

둘째, 정착된 대리인 제도도 연봉조정 신청 가능성을 높이는 요소다. 선수가 우월적 지위에 있는 구단과 껄끄러운 대면 접촉을 해야 했던 때와는 분위기가 달라졌다. 대리인 역시 구단 눈치를 전혀 안볼 수는 없다. 하지만 선수 본인보다는 훨씬 부담이 덜하다.

선수와 구단은 각각 연봉조정 신청 마감일로부터 5일이 되는 날 오후 6시까지 근거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선수나 구단 중 하나가 자료제출을 하지 않으면 제출한 쪽의 희망 연봉으로 자동 확정된다. 근거 자료도 선수 본인보다 대리인이 훨씬 풍성하고 정교하게 준비할 수 있다. 비교 자료가 많을 뿐 아니라 법률적인 지식에 있어서도 전문가가 많기 때문이다.

합리적 근거에 의해 도출된 희망 연봉일 경우 예년처럼 무작정 구단이 승리하리란 보장은 없다. 류지현 사례 이후 두번째 선수 승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과연, 2012년 이후 9년 만에 연봉조정 신청자가 나올까. 결론 확인까지 얼마 남지 않았다.
정현석 기자 hschung@sportschosun.com
년 우호관계의 반전

이란, 한때 중동 최대 우방국
혁명 뒤 反美·親北 노선에도 우호관계
고강도 제재 속 '돈'이 관계 발목잡아

오스트리아 빈 국제원자력기구(IAEA) 본부 앞에 게양된 이란 국기. 로이터연합뉴스

“서울·테헤란 양시와 양시민의 영원한 우의를 다짐하면서”

서울 강남역 1번 출구에서 나와 걷다보면 도로변에 둥근 표지석이 눈에 띕니다. 표지석은 직선으로 뻗은 널찍한 이 도로의 이름을 알려주는 것과 동시에 간략한 역사도 소개합니다. 1977년 이란 수도 테헤란의 골람레자 닉페이 시장은 서울을 방문해 서로의 이름을 딴 도로를 제안합니다. 이걸 계기로 ‘삼릉로’라는 다소 평범했던 이 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유명한 길 중 하나로 거듭납니다. ‘테헤란로’의 탄생입니다.


서울 역삼동 테헤란로 가로변에 위치한 표지석
○대장금 시청률 90%의 나라
테헤란로는 단순히 서울과 테헤란의 우호 관계만을 보여주는 길이 아닙니다. 이란은 한때 중동 지역의 대표적인 우리 우방국이었습니다. 박정희 정부 당시 이란에만 2만여명의 건설 노동자가 파견됐고, 김종필 국무총리는 1971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이란 건국 2500주년 기념식에도 참석했습니다. 당시 관련 소식을 전하는 대한뉴스는 이란을 “우리의 우방”이라고 강조합니다.

당시에 각각 동·서아시아의 대표적인 친미(親美) 국가이자 ‘개발독재’ 국가이던 한국과 이란이 서로를 우방이라 칭하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란은 1979년 이전까지 ‘샤’라 불리는 황제가 통치하는 국가였습니다. 당시 팔라비 왕조는 1960년대부터 원유를 수출해 쌓은 막대한 외화를 바탕으로 경제 개발에 나섭니다. 문맹 퇴치·토지 개혁·기업 민영화·여성 참정권·히잡 착용 금지 등 대대적으로 개혁 정책도 펼칩니다. 히잡 없이 여성이 집밖에 나가는 것조차 금지하는 지금 모습만 봐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이란은 당시 중동에서 가장 서구적이고 세속적인 나라였습니다.

물가 상승과 개혁 정책에 대한 반발은 결국 1979년 이란혁명을 불러옵니다.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 위원회는 팔라비 왕조를 무너뜨리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을 수립합니다. 지난 4일 한국 국적 선박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혁명수비대도 이때 탄생합니다. 호메이니가 팔라비 왕조에 충성을 바치던 군부가 혹여나 반(反)혁명 쿠데타를 일으킬까 걱정해 만든 친위대가 바로 혁명수비대입니다. 국제전략문제연구소(ISSS)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정규군을 제외한 혁명수비대의 병력만 19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1980~1988년 이란-이라크 전쟁 당시에는 병력이 100만명을 넘겼다고 알려져있습니다.


2019년 이란 테헤란 아자디광장에서 이란이슬람혁명 4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이란혁명수비대 모습. A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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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 이후 이란은 대표적인 반미(反美) 국가로 거듭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한국과는 꽤나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한국무역협회에 따르면 이란혁명 이듬해인 1980년 양국 교역액은 12억6000만달러(약 1조4000억원)로 전년(5억2000만달러) 대비 오히려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 2010년대 초반 이란은 한국의 중동 3대 수출국이었고 한국은 이란의 4대 교역국이었습니다. 양국 교역규모는 2011년 174억3000만달러(약 19조원)로 최대치를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한류 열풍의 중심이기도 해서 2007년 현지에서 방영된 드라마 <대장금>은 90% 시청률을 기록했고 2009년 <주몽>은 85%의 시청률을 기록했습니다.
○핵개발과 경제 제재
미국은 이란과 관계가 틀어진 이후에도 한국과 이란 간의 우호관계를 문제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서 이란이 군사적 목적으로 우라늄 농축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사실이 공개되면서 상황은 달라집니다. 단순 반미 국가와 반미 핵보유국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더군다나 북한 핵실험에 이란 핵과학자가 참관하는 등 북한과 이란은 핵개발에 있어서도 기술을 공유하는 것으로 알려집니다. 미국은 2010년 5월 ‘포괄적 이란 제재법’을 시행합니다. 이 법은 이란과 달러로 거래하는 외국 기업들도 제재의 대상에 포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란과의 교역규모가 워낙 크던 한국은 미국 정부로부터 달러 대신 원화를 이용해 무역대금을 결제하는 방안을 만들어 승인받습니다. 바로 지금 ‘동결자금’의 문제가 된 원화결제시스템입니다. 이란 중앙은행(CBI)은 국내의 기업은행과 우리은행에 원화계좌를 개설합니다. 이란의 수입상이 국내 기업으로부터 물건을 사면, 이란 기업은 이란 중앙은행으로 리얄화로 해당 대금을 입금합니다. 이란 중앙은행은 이란산 원유를 수입하는 국내 정유업체로부터 원화를 수입대금으로 받았고, 이 금액을 국내 은행의 원화계좌에 예치했습니다.

이란의 핵개발과 제재는 2015년 이란핵합의(JCPOA)로 끝나는 듯해 보였습니다. JCPOA는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주도해 중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이 이란과 맺은 합의입니다. 이란이 우라늄 농축을 일반 원자력발전 수준인 3.76%로 제한하는 대신 유엔의 대이란 제재를 일괄 종료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당선 직후인 2018년 이 합의를 일방 탈퇴합니다. 경제 제재도 곧바로 재개했는데 제재는 오히려 예전보다 더 강력해졌습니다.

1년여간의 제재 예외 인정 기간이 종료된 2019년 5월, 우리·기업은행의 이란 중앙은행 계좌가 동결됩니다. 이 금액이 자그마치 70억달러(약 7조6000억원)에 달합니다. 이란 멜라트은행이 한국은행에 지불준비금으로 예치한 돈을 포함하면 한국에 묶인 이란 돈은 90억달러(약 9조8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지난 4일 혁명수비대가 한국케미호를 나포한 직후 국내 언론에서는 나포 이유로 이 동결자금의 반환을 노린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자 이란은 발끈했습니다. “오히려 이란 돈을 아무런 이유 없이 인질로 잡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고 말이죠.

이란은 2019년 11월 유정현 주이란 한국대사 초치를 시작으로 동결자금과 관련해 한국 정부를 압박해왔습니다. 대통령까지 나섰습니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한국이 이란에 대해 우리 중앙은행 자금으로 기본재와 의약품, 인도주의적 물품을 구매하는 것을 금지한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며 “한국 정부가 가능한 한 빨리 이 조치를 해제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습니다. 다음달 외무부는 “워싱턴과 서울은 주인과 하인 관계”라고 원색 비난하며 국제소송 제기 가능성까지 언급했습니다.

협상이 지지부진하던 때, 한국 선박이 나포됐습니다. 해적이 아닌 사실상의 정규군이나 다름없는 국가 조직이 ‘해상 피랍’을 하는 경우는 매우 이례적입니다. 이란은 앞서 모종의 정치적 이슈가 있을 때 영국·UAE·인도 선박을 나포한 적이 있습니다. 동결자금 문제가 선박 나포의 원인이라는 것은 자연스레 유추할 만한 사실이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케미호 나포 후 외교부가 이미 한 달 전 이란이 우리 선박을 나포할 가능성에 관한 첩보를 입수했다고도 전해졌습니다. 선박 나포 주체, 가능성, 이유에 대해 사실상 모두 알고 있는 상황에서 ‘눈 뜨고 코 베인 격’인 것이죠.


이란이 지난 4일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포한 한국 국적 선박인 한국케미호. 로이터연합뉴스
○협상의 키는 결국 미국이?

그런데, 이 동결자금 반환을 놓고 선박 나포 전까지 진전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한·이란 관계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에 따르면 이란은 한국에 “동결 자산 가운데 10억달러를 약품과 의료장비를 구매하는데 사용하고 싶다”는 요청을 한 상태로 전해집니다. 외교부 관계자는 선박 나포 이튿날인 5일 “이란 정부가 ‘코백스 퍼실리티’를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확보하려 했고 인도적 거래를 위한 대금을 한국 원화 자금으로 납부하는 것에 대해 미국 재무부도 특별 승인을 내렸다”며 “다만 이란 측이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70억달러 가운데 일부로 백신 구매 대금을 납부하는 논의를 진행했고, 양국이 이 방안에 합의해 한국이 미국 재무부로부터 제재 면제 승인도 받았는데도 무산됐다는 것입니다. 이란이 두 은행 중 한 곳이 ‘미국 제재 때문에 이란 자금이 코벡스 퍼실리티 수금 계좌가 있는 스위스 은행으로 송금되는지 보증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하면서 난관에 부딪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란이 이 자금을 달러로 바꾸기 위해 미국 은행을 거치면 자동 동결될 것을 우려했다는 뜻입니다.

정부는 선박 나포로부터 만 이틀 후인 지난 7일 고경석 외교부 아프리카중동국장을 단장으로 하는 정부 대표단을 이란에 급파했습니다. 이어 10일 최종건 외교부 1차관도 이란으로 떠났습니다. 최 차관의 이란 방문은 당초부터 예정돼 있었는데 이란 정부는 최 차관의 방문이 선박 억류와는 상관없고 동결 자금 해제를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고 선을 긋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란은 한국케미호 억류가 해당 선박의 ‘환경오염’ 때문이라고 계속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란과의 ‘빅딜’로 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선박과 선원들의 안전한 귀환, 이란이 원하는 동결자금의 반환을 위해서는 결국 미국이 나서야 한다는 관측이 나옵니다. 한국이 자체적으로 동결자금을 반환할 수 없다는 걸 아는 이란이 불과 몇 년전까지 아주 좋은 관계를 유지하던 한국에 대해 이같은 ‘벼랑끝 전술’에 나서는 것은 결국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 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열흘도 안 남은 조 바이든 미국 차기 행정부 출범(오는 20일)에 앞서서 미국에는 전향적인 대이란 정책을 압박하고 한국에는 자금 반환을 위해 미국을 더 적극적으로 설득할 것을 압박한다는 것입니다.


서울 테헤란로의 모습.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테헤란로로 상징되는 이란과의 우호 관계는 한국케미호 나포 사태로 파국 위기를 맞았습니다. 선박 나포 직후 외교부 관계자는 “‘창의적인 해법’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 외교 당국이 과연 이란과의 외교뿐 아니라 미국과의 외교까지 얽혀있는 이 고차방정식을 하루빨리 풀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섭니다.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2016 서울 데얀 한국프로축구연맹
2016 서울 데얀 한국프로축구연맹
데얀(40·몬테네그로)이 K리그와 이별을 고했다.

홍콩의 킷치 SC는 데얀을 영입했다고 지난 9일 발표했다. 킷치는 "데얀이 홍콩에서 프로 생활을 이어간다. 데얀은 K리그에서 3년 연속 득점왕을 차지했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통산 36골로 역대 2위 기록을 세웠다"며 "데얀의 풍부한 경험이 킷치에 엄청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데얀 역시 SNS를 통해 "정식으로 킷치 소속 선수가 됐다. 킷치에서 보낼 2021년이 기대된다"고 알렸다.

데얀이 K리그와 마지막 인사를 나눈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수 생활 연장을 원한 데얀의 선택지가 홍콩이었다. K리그에서 더는 선수로 뛸 수 있는 팀을 찾지 못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2007년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하며 K리그 문을 두드린 데얀은 2008년 FC 서울 유니폼을 입고 최고의 선수로 거듭났다. 그는 K리그 최초 3년 연속 득점왕(2011~2013년)에 올랐고, 2012년 역대 한 시즌 최다인 31골을 넣었다. 데얀이 합류한 서울은 황금기를 맞이했다. 데얀은 3번의 우승(2010·2012·2016년)을 이끌었고, 2012년 최우수선수(MVP)에 올랐다. 2013년 ACL 준우승에 앞장서기도 했다.

키치SC로 이적하는 K리그 레전드 데얀. 키치 홈페이지 캡처

키치SC로 이적하는 K리그 레전드 데얀. 키치 홈페이지 캡처
그는 서울을 넘어 K리그의 전설이다. 외국인 최다 출장(380경기) 기록을 세웠고, 통산 198골을 터뜨리며 이동국(228골)에 이은 득점 2위에 이름을 올렸다. 한국에서 활약한 덕분에 몬테네그로 대표팀에 발탁돼 K리그의 위상을 높이기도 했다.

데얀도 세월과 싸워 이길 수 없었다. 그 결과 2018년 충격적인 이적이 이뤄졌다. 데얀이 서울의 최대 라이벌 수원 삼성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데얀은 수원에서 예전 같은 퍼포먼스를 보여주지 못했다. 2019시즌을 끝으로 수원과도 이별했다.

2020시즌을 앞두고 데얀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그가 더는 K리그에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는 비관이었다. 하지만 데얀은 포기하지 않았다. 주변의 시선과 의견에 흔들리지 않았다. 자신에 대한 믿음을 갖고 맞서 싸웠다. 그리고 이겼다. 데얀은 2020시즌 '다크호스' 대구 FC로 이적했고, 9골 3도움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펼쳤다. 데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걸 입증했다.

마흔 살 나이에 데얀이 새로운 리그에서 성공할 수 있을지 의심하는 이들이 많다. 1년 전처럼 데얀은 다시 편견과 싸우고 있다. 지난겨울, 수원을 떠나 새로운 팀을 찾고 있었던 데얀과 모바일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이 있다. 그때 데얀은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

"나는 나 자신을 믿는다. 절대 내가 스스로 내려놓지 않을 것이다."

그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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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재 기자 choi.yongja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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